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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썩어내리는 시간의 푸른 독이 나에게로
건너온 것만 같은 두려움에 떨며 南行( 3년 전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던 나는 가족을 보러 2-3주에 한번씩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이리 인터체인지
부근을 지나다녔다)을 향한 질주에 가속도를 붙이곤 했다.
그는 자신이 마주하는 일상적 시간은 물론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는 질긴 인과
시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살갗에 새겨넣듯 살아간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그의 껑충한 키와 부스스한 머리칼, 깊은 그늘 속의 눈빛
속에는 긴 시간을 견디는 자의 외로움과 황량한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나는 애써 그것들을 외면하지만 당신과이 사이에 놓인 불가시적인 거리를
건너오는 그 묵언의 호출에 언제나 당황해하며 지난 10여 년을 보냈다. 당신의 사람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반쯤 눈감아주며 기다리는 신뢰에 갚할
수 있는 날이 있을지 막막하기만 한데 선생의 언어들과 마주한 세계에 대해 글을 덧붙여야 되는 쑥스러움이라니.
2) 10년도 더 전에 선생과 나는 삼례의 숲 속에 소주 두어
병을 앞에 놓고 함께 앉아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는 숲 속에서 목이 붉어진 선생은 "시는 세계에 대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라는
거울 앞에 발가벗고 알몸으로 서기, 그 부끄러움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 하다니, 숲에서 내려다보이는 저수지의 수면이 박명의 햇살에 은박지처럼
깨끗했다. <백색의 공간 espace blance>과 수면에 드리워진 우수, 나와 당신은 삶의 절박한 궁핍함으로이별을 앞에 둔 채
시의 운명을 아니 삶의 불가해한 진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삶의 진실과 언어의 진실이 동의어라는, 평범하지만 엄숙하기 그지없는 삶의
秘義를 전해들으며 뼈속 깊이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나는 당신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무슨 몹쓸(?) 인연으로 그의 가계사와 개인적인
일상사의 많은 현상들을 보게 되었다. 함께 공유된 시간들은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도 하거니와 거꾸로 매우 말하기 힘든 <어떤 상태>에
빠뜨리기도 한다.
찬찬히 시인 정 양 아니 자연인 정 양을 떠올려보면 신기하게도 두 像은 일치된 하나의 모습일 뿐 잔상의
흐트러짐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관성>이 강요된 성격의 도덕적 원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에너지로 작용하는 충만된 진실의 유지 상태,
그리고 그것의 일생에 걸친 축적, 사람과 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그런 일관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어떻게 그토록 무거운 짐을
잠시도 벗어던지지 않는 부동심을 발휘할 수 있는가. 정양은 해방 이전과 이후 <끓는 가마솥>과도 같았던 해방공간 그리고 분단체재로의
이행과정이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 개인적 자아가 어떻게 그 지난한 역사적 시간을 내면에 수용해 현재적 상처로 복원, 구원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다. 산문과도 같은 사실적 디테일보다 다소 상징적인 알레고리가 시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거나
지방에 거주함으로써 말 많은 (평론가, 신문문학담당기자, 상업적 출판인) 자보누의적 확산통로에 그의 시세계가 놓여 있지 못했던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해방과 분단 이후 이 땅에서 체재의 기본모순이라는 원죄의 포충망에 걸려든 한 개인적 자아의 내면풍경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견뎌왔던 역사적 시간의 구조적 모순과 진실을 증언한다. 단순한 증언의 의미는 물론 그 긴 시간의 병렬적 전개 사이 사이에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상처들을 치유하고 위로해가는 따뜻한 인간에의 긍정과 치열한 열정까지 그는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개인적 자아의 모든
풍경과 진술들 속에는 서사적인 공간이 무한하게 펼쳐지고 있다. 특히, 금만경 평야의 광활한 대지와 묵은 농경언어들 속에 내장된 생생한 생명력의
복원은 다가올 미래 혹은 신생의 시간이 순환하며 빚어내는 근원적인 힘을 느끼게 한다.
3)
개나리꽃 울타리가 눈부시다 지붕이 폭삭 내려앉은 집 누가 살았던가 어떻게 집
떠났던가 지금은 어느 뼈빠지는 강산에 사무쳐 영영 돌아오지 않는가 안 보아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다 알고 있어서
더 미치겠다는 듯이 눈깜땡깜 엉만진창으로 피어서 휘늘어진 개나리꽃 방문도 부엌문도 사립문도 다 떨어져나가고 앞뒤로
휑하니 눈부시는 꽃 미치게 눈부시는 집
정 양 <빈집의 꿈 1> 전문
한국의 근대사는 근거지 박탈의 역사다. 식민지 치하의 북만주 이주, 조국 광복과 민주화를 위해 혹은 통일을 위해 셀 수 없는 혁명가들이
자의로 혹은 타의로 집을 나섰으며 6.25의 피난대열이 근거지 이동을 강요했고 박정권 이후 계속된 산업화가 다시 한 번 이농을 부추겼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한 곳에 정착해 살면서 전설과 신화를 만들던 <완벽한 세계>를 상실하고 말았다. 정양은 우리가 상실한 부서진 세계와
그 복원을 위해 <빈집의 꿈> 연작을 내놓았으며 표제로 최근 3번째의 시집을 펴냈다.
근거지를 박탈당하고 세입자들처럼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화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 식민지화가 곧 근대화로 이어졌던 한국 현대사의 질곡
모두에서 내어쫒긴 사람들의 수많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정양은 빈집에 '누가 살았던가/ 그가 어떻게 집을 떠났던가/그는 왜 영영
돌아오지 않는가/를 안 보고도 다 알고 있다. 정양의 이러한 세계인식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현대사가 여전히
분단체재 아래 고착돼 있고 민족 내부의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민주적 단계의 실현이 미흡한 상태에서 그의 상황인식은 현재형의 강한 의미를
갖는다. 그 개인의 내면에는 유년시절 그가 겪었던 처절한 내어쫒김의 기억이 처절하게 살아 있다. 정양의 오랜 지기인 윤흥길의 탁월한 장편
<장마>는 정양 가계사의 디테일을 매우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조운 최서해 등 해방공간의 탁월했던 몇몇 시정신들과 혁명가들 역시 그의
가계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 무렵 극렬했던 좌우갈등의 중심에 그의 부계의 처절함이 순장돼 있기도 하다. 정양은 이 무렵의 원체험을
첫시집 <까마귀떼>에 담고 있다.
유년시절 고향은 그의 이마에 돌팔매를 쳐 그를 추방한다. 죽음과 추방, 길 떠남의
시작이 그에게 유독 가혹하고 드라마틱한 비극으로 가득했던 것은 말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역사를 선택했던 부게의 전통 탓이었다. 땅에 묻힌 씨앗은
지표를 뚫고 자라오르듯 분단의 금기에 묻힌 그의 가족사는 정양의 가슴에 강력한 시적 언어로 자라날 수벆에 없었다. 집을 떠난 소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화해할 수 없는 갈등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리워지는 '집'으로의 회귀 염원은 그에게 커다란 그리움의 원천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리움을 위해 기꺼이 네쉬스 Ness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말 모양을 한 괴물.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을 맞고 죽는다.
네쉬스는 헤라클레스의 아내인 디아네라에게 자기의 피를 한 방울 받아두라고 한다. 헤라클레스가 이 피를 묻힌 외투를 입자마자 옷은 마치 불꽃처럼
헤라클레스의 온몸을 태운다. 벗으려 하면 살갗까지 묻어나 이 옷은 벗을 수 없다. 결국 죽음만이 헤라클레스를 이 극심한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의 외투를 입게 된다. 그의 첫시집에 소년의 순결한 정신과 깊은 한의 색조, 불에 데인 듯이 치열한 원죄의식 등이 함께 배어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해방되는 해에 불과 4살이엇던 그의 이름 밑엔 언제나 노을처럼 붉은 밑줄이 쳐져 있었고 이것은 그가 거느린 부자유의 원천이자
실존적 시간의 무거움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그의 의지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인화성이 강한 냉전 이데올로기의 폭발물울 요람삼아
성장해야 했던 셈이다. 개인의 탄생이 역사적 시간과 이렇게 일치되는 삶을 우리 현대사는 수없이 양산했다.
4) 개인사의 특별함만으로 그의 시정신이 자동적으로 역사의
지평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면의 상처와 국가보안법이 삼엄한 냉전체재 속에 던져진 실존적 시간, 구조적인 모순 하나하나까지
누구보다 잔인하게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위 네쉬스적 언어는 견딜 수 없는 굴욕과 비참함을 노래해야 했으리라. 폭력과 모순의 끝없는 확산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일은 차라리 역사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조우해 깨어지기보다 훨씬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대학교수로서
문학도들의 선배로서 거짓으로 언어를 팔지 않는 시인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분단체재 아래의 모순된 정치구조를 감당해야 하는 지식인으로서 끝없는
형벌 속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그의 삶이 이렇듯 수세적인 삶에 내몰려 내향적인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하는 것은 따라서 매우
도식적인 접근일 수 있다. 열리지도 않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란 말인가. 그는 관념적인 투쟁의 선진성도 급진적인 정치적 전망도 모험주의도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진실만을 부여잡고 견디는 것만으로 삶의 한 모범을 스스로 완성해감으로써 자신의 앉은 자리를 어느덧 커다랗게
확장하고 있다. 한 개인이 집단이나 조직과 만나게 되는 것은 그를 둘러싼 복잡한 실존적인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누구나 자유롭고 쉽사리
조직적 연대 속에 놓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할 때도 많다. 그는 그에게 다가오는 형벌과도 같은 시간을 거짓없이
견딤으로써 드디어 눈부시게 쓰라린 아름다움에 도달하고 있다.
5) 지붕이 폭삭 내려앉고 방문도 다 떨어져나간 현대사의 시간
언저리에 어느새 개나리꽃이 눈부시게 피어오르고 있음을 그는 안다.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희망이기도 한 것인지 개나리꽃은 엉망진창으로 피어서
휘드러지고 '집'은 어느덧 미치게 눈부시는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있다. 말없이 진실의 외로움을 견디는 자만이 깨닫는 쓰라린 눈부심 속에는
자연스럽게 서사적인 공간이 열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과 문학>3호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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