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럽고 어려운 시들 속에        - 동아일보 1971년 9월21일, <이달의 시>,  朴在森

 현대문학,월간문학,현대시학,시문학,창작과비평,문학과지성,을 비롯하여 신동아,월간중앙,세대,창조 등에 발표된 시가 147편, 엄청난 量産에 <이래도 지면이 모자란다>는 말은 못하리라.

  이 시들을 의무적으로 읽었지만 한 마디로 그 소감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수다스러움>이 너무 많다는 것이며, 또 정말 <어렵다>는 것이었다. 시가 인생을 재현하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든 우선적으로는 <집중적인 표현>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얘기한다는 것이 쑥스럽기만 하다.

  가령 이런 엉터리 현상도 사회諸般의 어떤 <不正>현상에 찌든 그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저 <남들도 그렇게 해서 詩를 영위하고 있으니까...> 하는 안이한 태도가 시인들끼리 서로 은연중에 물이 들어 그것이 급기야는 썩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썩어 있다는 좀 심한 얘기밖에는 범시단적으로 만연하고 있는 수다스럽고도 가당찮게 어려운 그 시들을 필자는 도시 어째볼 도리가 없다.

  이러한 시단의 현상을 그럴싸하게 백화요란(百花燎亂)의 그것이라 하기에는, 개개의 꽃이 향기를 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취와 독기를 뿜고 있는 느낌이 짙다. 공해현상이 시단에도 바야흐로 미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공해현상을 詩史上의 한 홍역으로 보기에는, 죄없는 독자가 받아야 하는 무형의 시련이 너무 가혹하고 터무니없다는 그것이다.

  이상과 같은 개괄적인 현상을 든다 해도, 역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자자(孜孜)히 캐면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는 흡족한 시 몇 편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신인의 작품으로, 정양의 <까마귀떼>와 <꽃>(시문학)이 단연 뛰어났다. 착상의 妙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두루 잘 배열된 이달의 秀作이었다. <까마귀떼>는

  " 내 아는 세상일
    신바닥으로 짓이기면
    신등으로 시린 진흙만
    묻어오르고 "
    하는 세상인사와
   " 목숨의 마지막처럼 비어 있는
    흐린 하늘을
    까마귀떼가 떠오릅니다
    산갈대가 허옇게 흔들립니다 "

  하는 自然事가 무리없이 對位되어 이미지의 선명도가 강하게 浮彫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꽃>에서도 바람을 투입시켜 목숨이 가진 외경스러움과 世事의 적막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런 솜씨야말로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유능한 신인의 그것인 것이다.

  얼토당토않게 현실에 주먹질을 하는 시, 얽힌 그물코처럼 도저히 풀 수 없는 국적불명의 시, 이런 것들이 근래의 新人詩를 대표하는 그 무엇처럼 알려졌는데, 그러한 시에 비한다면 鄭洋의 이상의 두 시편은 침묵으로 <좋은 시가 어떤 것>이라는 의문에 대답해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나라말로 쓰는 시가 우리詩 같지 않다는 신인 일반의 이 비통한 근황에서 鄭洋은 완전히 벗어나 있어 반가왔다. 이러한 시작태도야말로 작품이 안 돼 있어도 신인이면 패기만을 찾는 안일한 시단에 진정한 <무서움>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리라 믿는다.

  時俗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신인 鄭洋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는 이 한 가지만으로도, 필자는 나태하고 무기력한 시단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으려 한다.